'황금 불탑의 나라' 미얀마의 새벽은 탁발(托鉢)로 시작된다. 하지만 2021년 2월,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이끄는 군부가 민주 정부를 전복하고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그 고요했던 새벽은 비명과 총성으로 찢겨나갔다.
어느덧 5년이 흘렀다. 그 세월 동안, 미얀마의 승가(僧伽)는 '독재의 조력자'와 '저항의 투사'라는 두 개의 얼굴로 처참하게 쪼개졌다.
# 독재자의 면죄부가 된 '세계 최대 불상'
군부는 총칼로 잡은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노골적으로 불교를 이용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민 아웅 흘라잉이 수도 네피도에 건립해 2023년 봉불한 '마라위자야(Maravijaya)' 불상이다.
'세계 최대의 앉아있는 대리석 불상'이라 선전하는 이 거대한 성물 앞에서, 독재자는 수시로 보시를 하고 고승들을 초청해 화려한 법회를 연다.
이 기괴한 부조리극에 미얀마 불교계의 원로인 '국가 승가 마하 나야카 위원회(Mahana)' 일부와 극우 불교 단체 '마바타(Ma Ba Tha)' 잔존 세력들이 동조했다.
이들은 '불교 수호'라는 명분을 내세워 군부의 통치를 옹호하고, 민주 진영을 '불교를 파괴하려는 외세의 앞잡이'로 매도했다.
살생(殺生)을 금하는 계율이 권력의 탐욕 앞에서 '체제 유지의 도구'로 전락한 순간이다.
승려가 독재자가 내미는 피 묻은 공양물을 받는 순간, 그 밥그릇은 중생의 고혈(크血)로 변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 정글로 간 스님들 "중생이 지옥에 있는데 선방이 무슨 소용"
그러나 권력의 그늘 밖에는 전혀 다른 승가가 존재한다.
만달레이와 양곤의 젊은 수좌들은 2021년 쿠데타 직후부터 '불살생은 인간의 기본'이라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군경의 조준 사격에 스님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수많은 수행자가 체포되어 가사를 벗겨지거나 고문을 당했다.
5년이 지난 지금, 저항하는 스님들은 지하로 스며들거나 국경 지대 정글로 들어갔다.
일부는 시민방위군(PDF)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자처하며, 난민들에게 구호 물품을 전달하는 '보살행'을 실천하고 있다.
한 30대 스님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생이 독재라는 지옥 불에 타고 있는데, 혼자 선방에 앉아 극락을 구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이들에게 수행은 참선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웃과의 처절한 연대다.
미얀마 군부는 올해 초부터 저항 세력을 배제한 채 '반쪽짜리 총선'을 강행하며 정권의 합법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승가의 분열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 한국 불교에 던지는 화두
미얀마의 혼란은 한국 불교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불교 역사를 되짚어보면 '저항'과 '순응'이라는 두 개의 얼굴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산문(山門)을 박차고 나와 시대의 아픔과 마주했던 자랑스러운 승가(僧伽)의 전통이 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최전선에 섰던 만해 스님의 서릿발 같은 기개, 1980년 오월 광주의 피울음과 1987년 뜨거웠던 아스팔트 위에도 깨어있는 수행자들은 늘 시민 곁에 있었다.
그러나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은 법. 동시에 '호국불교(護國佛法)'라는 미명 아래 독재 정권의 안녕을 축원하고, 권력의 비호 속에 기득권을 향유했던 부끄러운 과거를 부정할 수 없다.
불의에 침묵하고 권력에 기생했던 그 시절의 업보(業報)는 여전히 우리 불교의 발목을 잡고 있다.
오늘날 한국 불교는 과연 어디에 서 있는가. 낮고 어두운 곳에서 신음하는 약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는가, 아니면 가진 자들의 번뇌를 씻어주는 고급 '힐링 센터'의 안락한 방석 위에 안주하고 있는가.
자비(慈悲)는 법당 안의 고상한 관념이 아니다. 중생이 아프면 보살도 아프다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마음으로, 고통받는 현장에 뛰어드는 구체적 실천행이다.
피 묻은 가사를 입고 독재의 총구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미얀마의 젊은 수좌들. 어쩌면 그들이야말로 21세기, 가장 처절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현현(顯現)한 '살아있는 부처'일지 모른다.
미얀마의 비극이 나태해진 한국 불교의 정수리를 내리치는 서늘한 죽비소리로 들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