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의 마천루 숲에서 '10분 명상'이 가장 트렌디하고 '힙(Hip)'한 상품으로 소비되는 2026년의 오늘, 한쪽에서는 불교가 거대한 '웰니스 산업'으로 각광받으며 화려한 조명을 받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정치 권력의 인질이 되어 신음하는 기이한 역설.
자비(慈悲)의 종교가 배타적 민족주의의 칼날로 변질되고, 무소유(無所有)의 가르침이 실리콘밸리의 성공 수단으로 전락한 지금, 세계는 바야흐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희미해지는 '말법(末法)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본지는 오늘부터 연재하는 기획 시리즈 [세계 불교, 지금 어디로 가나]를 통해 동서양 불교가 직면한 3대 위기인 박해, 세속화, 그리고 상업화의 실상을 심층 진단한다.
이것은 비단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텅 빈 법당과 고령화된 신도, 그리고 심각한 '출가자 절벽'에 직면한 한국 불교의 미래를 비추는 서늘한 타산지석(他山之石)이자, 우리 승가에 던지는 무거운 화두(話頭)이기 때문이다.
현재 아시아 불교가 마주한 가장 큰 위기는 다름 아닌 '정치화'다. '불탑의 나라' 미얀마에서 승가(僧伽)는 처참하게 두 쪽으로 갈라졌다.
군부 독재의 무자비한 총구 앞에서 시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선 젊은 수좌들이 있는 반면, 권력의 비호를 받으며 독재자에게 축원과 축복을 내리는 일부 원로 승려들의 모습은 충격을 준다.
불살생(不殺生)이라는 불교의 제1계율이 현실 정치의 폭력과 탐욕 앞에서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장이다.
스리랑카 역시 불교가 극단적 민족주의와 결합해 타 종교를 배척하고 탄압하는 기제로 변질되면서, '불법(佛法) 수호'라는 명분 아래 정작 부처님의 자비심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동양의 불교가 정치에 휘둘리고 있다면, 서구의 불교는 '영혼 없는 유행'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불교는 종교라기보다 세련된 '라이프 스타일'에 가깝다. 구글과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의 엔지니어들은 스트레스 관리와 업무 효율을 위해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명상)'에 몰두하지만, 그 속에는 불교의 핵심인 '계율'과 '지혜'가 결여되어 있다.
서구의 비판적 지식인들은 이를 두고 '맥마인드풀니스(McMindfulness)', 즉 패스트푸드처럼 손쉽게 소비되는 명상이라고 자조한다.
고통의 근원인 탐·진·치(貪瞋癡)를 직시하는 수행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에 더 잘 적응하고 성공하기 위한 '진통제'로 변질되었다는 뼈아픈 지적이다.
티베트 불교의 현실은 더욱 암울하다. 달라이 라마라는 걸출한 영적 지도자의 거대한 존재감 뒤에는, 그가 입적한 이후 닥쳐올 '영적 진공 상태'를 두려워하는 망명 정부의 깊은 불안이 깔려 있다.
중국의 강력한 한화(漢化) 정책 속에 티베트 본토의 불교 전통은 박제화되고 있으며, 전 세계로 흩어진 난민들의 신심은 디아스포라의 거친 파도 속에서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이처럼 거대한 세계 불교의 위기 앞에서 과연 한국 불교는 안전지대에 있는가.
우리는 정치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얼마나 독립적이며, 우리의 템플스테이와 명상 프로그램은 상업화의 유혹에서 자유로운지 되물어야 한다.
무엇보다 고통받는 중생의 현장에 우리 승가가 진정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뼈를 깎는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불교는 본래 '길(道)'의 종교다. 길을 잃었다면 다시 지도를 펼치고 나침반을 확인해야 한다.
이번 연재는 미얀마의 피 묻은 정글부터 런던의 화려한 명상 센터까지, 세계 불교의 굴곡진 현장을 따라가며 잃어버린 '붓다의 길'을 복원하려는 시도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불교는 불교가 아니며, 깨달음을 상품화하는 명상은 올바른 수행이 아니다.
일그러진 세계 불교의 자화상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치열한 '초심(初心)'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굳게 닫힌 산문(山門)을 열고 세상 속으로, 고통 속으로, 그리고 사람 속으로 들어가야 할 때다.